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령 알제리 (문단 편집) == 지위 == 원주민의 대우는 여타 식민지인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프랑스는 다른 식민지들과는 달리 알제리만큼은 지배 기간 내내 본토의 일부로 취급하였는데 실제로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에 프랑스 본토의 행정구역과 동일한 데파르트망을 설치했고 데파르트망 지사를 파견하여 알제리 지역을 관할했다. 이는 인도차이나를 비롯한 프랑스의 다른 식민지들에서 정부로부터 자치를 위임받은 총독이 실권을 쥐었던 것과 크게 다르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본토로 편입한 이유는 [[지중해]]만 건너면 바로 도달할 수 있는 프랑스 본토와 가장 가까운 식민지였던 데다 프랑스 본토와 지리적 환경이 유사하고 각종 자원이 풍부하여 개발 가치가 높은 땅이었을 뿐더러 공식적인 영토가 될 경우 프랑스-알제리 사이의 해역, 즉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목을 프랑스가 완전히 장악하는 이점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또 아프리카로 진출하는 거점으로 삼기 적절하였는데 실제로 프랑스군의 주요 군항과 군수물자 공장들이 위치했으며 그 유명한 [[프랑스 외인부대]] 역시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만큼 지정학적 가치가 매우 높았고 또한 유럽과도 가까워 당대 프랑스인들에게도 알제리는 프랑스의 적법한(?) 본토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근시점인 1960년대까지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프랑스의 집착은 다른 식민지의 독립 과정보다 [[알제리 전쟁]]이 훨씬 더 잔인하고 폭압적인 형태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알제리는 프랑스 본토의 일부였으므로 알제리의 유권자는 [[프랑스 국민의회]]에도 진출할 수 있었지만 당시 프랑스는 시민권자인 프랑스계와 기타 유럽계([[피에 누아르]]), [[세파르딤]] 유대인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었고 아랍계 알제리인들에게는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참정권을 주지 않았다. [[레옹 블룸]] 총리 시절에 연정에 참여했던 [[프랑스 공산당|공산당]]과 [[사회당(프랑스)|사회당]]의 요구로 알제리 아랍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지배민족의 지위를 잃을 것을 두려워한 피에 누아르들의 극심한 반대에 [[급진당(프랑스)|급진당]] 의원들이 휘둘리면서 결국 좌초되었고[*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배하던 시절은 프랑스 본토에서조차 여성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전부터 개종을 해야 시민권을 준다는 타협안이 제시되었지만 이에 호응한 아랍계는 극히 드물었다. 물론 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 본토인 대접받은 사람은 꽤 있었고 이를 소재로 한 작품도 많은데 [[애니메이션 영화]]인 [[파리의 딜릴리]]가 대표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